한국은 지금 거대한 사회 실험을 진행 중이다. 한쪽에서는 출산 장려 정책이라며 현금 보조금과 슬로건을 쏟아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출산과 모성을 ‘부담’, ‘실수’, 혹은 ‘구시대적 선택’으로 취급하는 문화가 지배한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세계 최저 출산율. 실험은 이미 실패했다.
지배적인 담론은 말한다. 낙태의 정상화, 개인의 커리어 절대화, 가족의 해체가 곧 진보라고. 하지만 이 진보는 이상하게도 비어 있는 학교, 급속히 늙어가는 인구, 노동력 부족, 붕괴 직전의 연금 시스템과 함께 온다. 참으로 놀라운 우연이다.
정부는 깊은 문화적 문제를 일시적 보조금으로 해결하려 한다. 마치 아이가 할인을 주면 팔리는 상품인 것처럼. 하지만 사람들은 출산을 실패로 여기고, 부모 역할을 희생으로만 보는 사회에서 가정을 만들지 않는다.
제도화된 페미니즘은 자유를 약속했지만, 그 대가는 고립, 인구 붕괴, 그리고 생물학적 현실과 경쟁하도록 교육받은 세대였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과, 그 선택들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결과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이 없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남는 것은 사라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통계뿐이다.
정치가 영감을 주지 못할 때, 문화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K-pop 아티스트들이 등장한다. BTS와 같은 그룹은 이미 음악을 넘어 언어, 정체성, 감정 표현, 삶의 태도까지 바꿔왔다. 이들이 가진 상징적 영향력은 어떤 정부 정책보다 크다.
현재 한국 대중문화는 끝없는 젊음, 뿌리 없는 자유, 임시적인 관계를 이상처럼 그린다.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성장하는 것은 무언가를 잃는 일이라는 인식이다. 문제는, 성장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도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아티스트들은 선전이나 도덕 설교 없이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어른이 되는 삶, 가정을 꾸리는 삶, 아이를 낳는 삶이 꿈의 끝이 아니라 다음 장이라는 이야기. 책임이 감옥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메시지. 성공만큼이나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
BTS는 이미 고통, 불안, 사회적 압박, 삶의 의미를 노래해왔다. 그 다음 단계는 자연스럽다.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질문이다. 아이를 금기나 위협으로 말하지 않는 인터뷰, 세대를 잇는 이미지를 담은 뮤직비디오, “내가 사라진 뒤 무엇이 남는가”를 묻는 가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문화는 욕망을 만들고, 욕망은 선택을 만들며, 선택은 인구 구조를 만든다. ‘나’만을 숭배하는 사회는 결국 고독과 소멸을 수확한다. 반대로, 예술이 가족과 출산을 인간적이고 존엄한 선택으로 다시 그려낸다면 변화는 실제가 된다.
출산 장려 정책에 문화가 없다면 그것은 비싼 행정일 뿐이다. 하지만 예술이 미래를 외면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 사회는 다시 삶을 원하게 된다.
정치가 방향을 잃고 대중문화가 미래를 말하기를 주저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조용하지만 지속적으로 기반을 다지고 있는 사회적 힘이 있다. 바로 **한국의 개신교(복음주의 교회)**다. 그 영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가족·공동체·희생·세대의 연속성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몇 안 되는 제도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가 출산율 위기를 단기적인 재정 지원으로 해결하려 할 때, 교회는 훨씬 더 어렵고 근본적인 일을 한다. 바로 가치를 형성하는 일이다. 교회는 생명을 통계로 보지 않고, 자녀를 경제적 부담으로만 보지 않는다. 생명은 소명이며, 책임이고, 삶의 의미라는 서사를 제공한다. 이는 어떤 보조금으로도 살 수 없는 문화적 토대다.
한국 개신교의 힘은 대형 교회나 신자 수에만 있지 않다. 그 핵심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기반 활동에 있다. 가정 상담, 공동체적 돌봄, 결혼과 양육에 대한 지지, 임신과 출산을 맞이한 여성에 대한 환대. 자녀를 ‘전략적 실수’로 배우며 자란 세대에게, 교회는 전혀 다른 가치 체계를 제시한다.
또한 교회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을 제공한다. 바로 세대 간의 연결이다. 아이와 어른, 노인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도덕 언어와 미래관을 공유한다. 이는 극단적 개인주의가 가족 형성을 약화시키는 흐름에 대한 강력한 문화적 대안이다.
출산 친화적 문화는 법 하나나 캠페인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가 다시 한 번 “내일은 오늘의 노력만큼 가치가 있다”고 믿을 때 가능해진다. 이 점에서 개신교회는 단순하지만 오늘날 가장 급진적인 메시지를 지킨다. 생명은 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보호하고 전해야 할 선물이라는 생각이다.
한국이 진정으로 인구 절벽을 넘고자 한다면, 기술관료적 접근을 넘어 미래, 희생, 희망을 말하는 제도들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기반 없는 출산 장려는 회복이 아니라 지연일 뿐이다. 그리고 그 기반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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